인도네시아 대사관을 방문하다.

'개봉 다이어리' 2020년 1월 16일



영화 매니아 우마르 하디 인도네시아 대사로부터 몇 주 전에 연락이 왔다. "혹시 대사관으로 방문을 해주시겠습니까?"


우연히 한 영화제에 만나 담소를 나누다 인도네시아에도 북한 전쟁고아들처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네덜란드, 프랑스 같은 유럽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60년대 일이다.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이 동유럽에 이주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들의 반정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당시 수카르노 장군(후에 대통령이 됨)이 이끄는 군부는 쿠데타의 주역을 비롯한 공산주의 계열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개시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 전쟁고아들의 유럽 이주는 일종의 정치적 박해를 피한 탈출에 가까웠다. 전쟁과 대립, 학살과 죽음이 교차했던 1960년대의 인도네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자식으로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유와 목적은 달랐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유럽으로 이주했다는 역사만큼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김감독에게 인도네시아에서 <두 개의 고향>과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영화도 같이 보여주면 좋을 것 같고요."


인도네시아 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놀랍기도 하면서도 고마웠다. 처음 시작은 아주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했다. 개인이 혼자서 동유럽의 숨겨진 역사를 헤집고 다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가 알아주길 바래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숭고한 행위에 대한 기록'을 영화로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해야할 책임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조금씩 세상 곳곳에서 <두 개의 고향>에 대해서 손짓을 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와 비슷한 것이 많은 인도네시아. 그들은 어쩌면 이런 아픔을 딛고 일어선 한국인과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영화가 인도네시아와 대한민국의 가교 역할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대사관을 나와 여의도의 찬바람 부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다. 여의도 증권가의 높은 빌딩 숲이 눈에 들어왔다. 70년 전 가난과 죽음의 땅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아픈 기억들은 이제 먼 과거가 되어가고 있지만,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분명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 개의 고향>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슬픔을 관통한다. 하지만 그 끝에는 분명 희망과 번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 개인의 작품을 넘어 세상으로 향하는 <두 개의 고향>을 위하여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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